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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엘리트 탐정에게,
한밤중의 밴쿠버에서,
라더로부터.

 

 

*

 

 

3월 2일. 날씨…

 

 

  얇은 펜촉이 노트에 방점을 새긴다. 하나, 둘, 셋. 알맞게도 세 번. 줄임표로 변질한 꼬리를 라더는 말없이 내려다본다. 침중한 눈길이 창밖을 일별한다. 한기 어린 창문 너머 밤하늘은 달빛조차 길을 잃고 어둑하다. 자정이 넘도록 그치지 않은 싸락눈이 여린 음성으로 밤을 두드린다. 툭. 투둑. 바닥을 구른 알갱이가 투명하게 녹아내린다. 거리가 완연한 적막에 휩싸인 순간 마침내 그는 펜을 움직인다.

 떠올린 단어를 옮겨 적는다. 매끄럽지 못한 글자들이 어색하게 간격을 두고 이어진다.

 

3월 2일. 날씨… 흐림.

 안녕.

 

 계절은 마침 너를 처음 만났던 3월의 봄. 일기장을 샀다.

 

 

 

 

3월 3일. 날씨 흐림.

 어제는 싸락눈이 내리더니 오늘은 비가 내린다. 종일 이슬비가 내리다 그치길 반복하는 통에 입고 나간 외투가 축축하게 젖어버렸다. 그 탓으로 불을 쬐고 있는 지금도 춥긴 하지만, 겨울보단 나은 거 같다. 적어도 비는 무릎 아래까지 쌓여서 나를 곤혹스럽게 하진 않을 테니까. 주인 할아버지한테 들었는데 여기는 가끔 삼월에도 폭설이 내린다고 한다. 날씨가 워낙 변덕스럽다나. 내가 있는 동안엔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3월 5일. 날씨 흐림.

 주인 할아버지한테 차를 빌려 호수에 다녀왔다. 작년 여름에 발견한 곳인데, 외진 구역에 있긴 해도 물고기가 많이 잡혀 종종 찾고 있다. 뭐… 오늘은 어쩐 일인지 입질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가끔은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오후엔 날이 개어 호수에 비친 풍경이 그림처럼 웅장해 보였다. 물고기가 아니라 그걸 보러 갔다고 여기면 아쉬운 마음에도 위안이 들었다.
일기를 쓰다 보니 일회용 카메라를 챙겨 갔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그럼 인화한 사진을 일기 아래에 붙일 수 있었을 텐데.
너한테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생각하면 다음에는 잊지 않고 가져갈 수 있을까.

 

3월 17일. 날씨 흐림.

 

거기는 요즘 어때. 봄장마는 아직이야? 초봄 날씨가 서늘할 테니 어쩌면 조금쯤 눈이 내릴지도 모르겠다. 요즘 시대에 날씨 정도야 인터넷 검색해보면 금방 알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진 않으려고 한다. 그저 너에게 묻고 싶었을 뿐이지 진심으로 궁금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 참. 여기는 아직도 비가 내린다. 우중충한 하늘도 변함이 없다. 되짚어 본 지난날의 일기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사람의 기록 같았다. ‘비가 내린다.’ ‘오늘도 비.’ ‘부슬비.’ ‘계속 비가 내려.’ ‘도대체 언제 화창해지지?’

 지겹다. 아무래도 우기 같아. 당분간 날씨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3월 19일. 날씨 흐림.

 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정말로 많아. 지난 구 년간 버리지 못한 물음들이 등 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거 때문에 내가 버린 편지지만 해도 벌써 수십 장은 될 것이다. 몇 날 며칠 망설이고 문장을 고치고 마음에 안 드는 글씨를 핑계로 종이를 구기고… 겨우 추스른 말 한마디를 어렵게 적어 편지에 봉하곤 했지만, 끝내는 전하지 않고 찢어버렸다.
빨간 우체통을 이 미터 거리에 두고 보내지 않은 편지를 손에 쥔 채 돌아설 때마다 나는 이유 모를 부채감을 느끼곤 했다.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아서.

 

너도 그랬을까.
한때는 너의 주먹 안에도 보잘것없이 초라한 물음 따위가 들어있었을까.

 

 당신이라면 왠지 묻지 않고도 답을 알아냈을 거 같은데.

 

3월 23일. 날씨 흐림.

 봄이라 헛소리를 한다.
아니, 비 때문에. … 비가 너무 자주 와서 그래.

 

3월 28일. 날씨 흐림.

 일기 쓰는 날이랑 낚시 가는 날은 따로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낚시하면서 생각을 다 정리해버렸더니 쓸 게 없어 일기 내용이 빈약해졌다. 급한 대로 오늘 본 풍경이라도 적어볼까 했는데, 지나온 일기를 확인해 보니 이미 똑같은 내용으로 서너 번은 넘긴 게 보여서 그만두었다. 생각보다 내 생활반경이 그리 넓진 않은가 보다. 다음에는 근처에 있는 강이라도 가봐야 하나.
아래에 붙인 사진은 저번에 말했던 호수의 사진이다. 도중 날이 개어서 그날 봤던 풍경을 그대로 찍을 수 있었다. 꼬박꼬박 카메라 챙겨 나가길 잘했다니까.

 

4월 1일. 날씨 흐림. 

 만우절이다. 일 년 중 거짓말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날. 시차가 있으니 한국은 어제가 만우절이었겠지. 재밌는 장난은 많이들 치고 놀았어? 너나 수현이나 바쁜 사람들이니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알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거나.
오늘 나는 일하는 사무실과 홈스테이하는 집에서 소소한 장난들을 주고받았다. 사람들 모자나 주머니에 사탕을 넣어두고 모르는 척했는데, 다들 좋아했던 거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넘길 수 있으면 좋겠다. 장난이라 한들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4월 7일. 날씨 흐림.

 꿈에 크고 새카만 물고기가 나왔다. 배경은 익숙한 어느 다리 아래. 낚아 올린 녀석을 곧장 놓아주려 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그걸 꽉 끌어안고 있었다. 꼬리를 뒤틀고 사납게 퍼덕거리는 몸뚱이를 품에 안고서……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땠더라. 옷이며 얼굴이며 온통 축축했다는 걸 빼면 생각나는 게 거의 없다.
다만 그게 좋은 꿈이 아니었으리란 짐작은 든다. 물고기의 비늘은 윤기가 없었고 전에 본 적 없이 검었다. 그것을 당장 물속에 내던져버리고 싶었다.
악몽이라기보단 흉몽에 가까운 느낌이라 해야 할까. 한동안은 몸을 조심해야겠다.

 

4월 13일. 날씨 흐림.

 하마터면 지갑을 잃어버릴 뻔했다. 점심을 먹고 가게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가방끈을 붙잡더니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덩달아 뛰다가 소매치기에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죽기 살기로 따라가 잡았으니 망정이지, 놓쳤으면 환전한 돈은 물론이고 신분증에 여권까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집으로 돌아와 지갑에 든 돈을 확인하다가 안쪽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언제 넣어둔 건진 기억나지 않지만, 잃어버리고 싶지 않으니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여기에 끼워놓으려고 한다.
괜찮지? 방송부 사진은 너도 오랜만일 거 아니야.

4월 21일. 날씨 흐림.

 드디어 팔목이 깨끗하게 나았다. 계속 상태가 안 좋으면 병원에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망할 소매치기 녀석. 무슨 가방을 그렇게 세게 당겼는지.

 

4월 30일. 날씨 흐림.

 바싹 말라 버석거리는 페이지의 일기를 읽다 보면 노트를 사 왔던 밤이 떠오른다.
등 뒤에서 짤랑거리며 울리었던 차임과 뺨으로 날아온 진눈깨비, 페이지에 들러붙은 눈송이를 털어내기 급급했던 밤. 난롯가에 앉아 젖은 노트를 말리는 게 여간 고생이 아니었던 그 밤에 나는 노트의 첫 페이지를 펼쳐두고 한참이나 깨어 있었다. 텅 빈 백지가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트의 쓰임이 정해진 건 그 페이지에 네 이름을 적은 순간이었다. 단 두 글자. 중학교 시절에도 적어본 일이 드물었던 이름을 꾸역꾸역 새겨넣었다. 손에 익은 글씨로 적혀 있는 이름이 한없이 낯설어 오랜만에 부르고 싶었다. 제법 어색하고… 껄끄러운 감정이었다.
자국이 남도록 짙게 눌러 적은 이름을 지우며 나는 나의 이십오 년 인생에 너와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일 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했다.
그러니 편지가 아닌 일기를 써야 했다.
편지 같은 일기를 나는 써야만 한다.

 

 

 

 

 스물세 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때 라더는 혼자서 촛불을 끄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후우. 입김을 불면 주홍빛 도는 불빛이 스러지고 얇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등불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원룸에 앉아 라더는 단면이 번들거리는 제과점 조각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같은 과 동기에게 기프티콘으로 받은 생크림 케이크는 부드럽고 향이 좋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으로 보였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연기가 희미해진 초를 집어 들었다. 색색의 줄무늬가 사선으로 새기어진 생일초의 감촉은 울퉁불퉁했다.

 

 

당연하다는 건…… 참으로 강박적인 말이지.

 창틀을 넘어 방안으로 침입한 달빛이 부러진 초와 부스러기만 남은 플라스틱 틀을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해피 버스 데이 투 미. 그날 라더는 끝까지 불을 켜지 않고 생일 케이크를 먹었다. 동기에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내년 생일엔 선물을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케이크 안 좋아해?’
‘아니야. 맛있었어.’
‘그런데 왜?’
‘그냥. 스물넷에는 뭐든 다른 걸 해보려고.’

 이듬해 십이월, 스물네 번째 생일을 맞이한 그는 밴쿠버의 홈스테이 가정에서 영어로 된 생일 축하 노래를 듣게 된다. 해피 버스 데이 투 유. 익숙하지 않은 발음으로 따라 부르며 박수를 쳤다.

 

 

 

 

7월 21일. 날씨 흐림.

 맑은 날에는 페이지마다 일기 대신 사진을 끼워두었다. 이 노트엔 너에게 하고 싶은 말, 하기 전에 다듬어야 하는 말들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으니까. 설명을 앞서 와닿는 풍경이란 게 진실로 존재한다면 그 사진들은 일기로 알맞을 것이다.

 


8월 6일. 날씨 흐림.

 밴쿠버의 여름은 화창하다. 겨우내 뿌옇고 어두웠던 하늘이 멀게 느껴질 정도로 청명한 나날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지. 작년 십이월에 공항을 나섰을 땐 희고 혹독한 추위에 질려 금방 떠나온 한국이 그리웠는데. 여름이 되고 보니 날씨가 온화해져서 이곳에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이맘때 한국은 에어컨 없이 견디는 게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8월 18일. 날씨 흐림.

 사무실 동료들과 키칠라노 비치에 다녀왔다. 근처에 네트가 설치돼 있어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비치발리볼 내기를 했다. 모래사장을 구르고 맛본 승리의 피시 앤 칩스는 눅눅하고 짭짤했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한 맛은 아니라 무심코 바다로 눈길이 흘렀다. 흐리멍덩한 맛과 함께 잊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구름이 흘러 파랗게 개어버린 하늘을 되비추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안일했던 마음을 후회했다. 흐물흐물한 피시 앤 칩스가 불러온 오늘의 풍경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8월 29일. 날씨 흐림.

 하늘이 시리고 구름이 깨끗한 날마다 나는 그날의 풍경을 너에게 건네주고 싶었다.
속없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기분이 상쾌하다가도 어딘가 한구석이 텅 빈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번 여름이 유난하다는 말은 아니다. 지나온 숱한 여름마다 내 속에는 기척도 없이 마모된 것들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형태도 색깔도 알지 못하는 그것들이 전부 닳아 없어진 다음에서야 나는 간신히 그 사실을 눈치채었다.
이런 느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혼자서 방송 대본을 고쳐 쓰던 시절을 따라 적어보려고 해도, 정체조차 불분명한 감각 따위를 도대체 무슨 수로 종이에 꺼내놓겠다는 것인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9월 12일. 날씨 흐림.

 하늘이 자주 흐려지는 걸 보니 가을이 오고 있는 거라고 주인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밴쿠버의 봄과 여름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지만, 여름과 가을의 차이는 비교적 선명한 듯하다. 구름이 뭉쳐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면… 그래서 화창한 날이 줄어들게 된다면, 일기 대신 사진을 끼워놓는 일도 차츰 적어지게 될까?

 

9월 15일. 날씨 흐림.

 날이 건조해지니 부쩍 옛날 생각이 난다. 사계절 내리 습한 섬마을에 살다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건조해지는 육지로 발을 디뎠던 그때가 유독하게 떠오른다. 멀리까지 왔다고 생각했으나 돌아보면 한걸음 옮기었을 뿐이었던 나날.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골머리를 앓았던 새벽……. 지금과 썩 다르지 않은 성도 싶다.

 

9월 16일. 날씨 흐림.

 그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언젠가 나에게 찾아올 봄을 남김없이 활용하고 싶었을 뿐이다.

 

9월 18일. 날씨 흐림.

 그렇지만 지난한 과정을 생략하고 나아갈 방법은 아무래도 없는 듯하다.

 

9월 20일. 날씨 흐림.
 
나흘간 일기를 썼다가 지우길 반복하며 생각을 정리해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마음먹었다 해서 모든 게 일사천리로 끝날 수만 있다면 열여섯에 시작된 이 이야기를 지금까지 끌고 오진 않았을 것이다.

 

9월 21일. 날씨 흐림.

 고등학생 때였나. 언젠가 나는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네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고통까지는 과해도, 아주 조금 정도는 아플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추잡하고 못난 생각을 했었다. 나의 고통은 너의 탓이 아니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마음대로 마음을 조절할 수 없는 시절이 성가시게 길었다.

 

9월 22일. 날씨 흐림.

 황당한 건, 그런 생각을 한 다음엔 반드시 너의 안녕을 바랐다는 것이다. 잘 지내. 잘 지내야 해.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나는 항상 죄를 짓고 급하게 속죄하려는 사람처럼 긴박하게 말했다. 잘 지내. 잠뜰아.

 

9월 23일. 날씨 흐림.

 악의와 죄의식이 휘몰아치는 중심에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네가 있었다.
나는 열여섯의 너를 알았지만, 그것은 존재 여부가 불확실한 허상이었다. 또한 나는 스물넷의 당신을 절대로 알 리 없었지만, 그가 바로 내 곁에 있던 너의 진실이다. 안다. 당신은 사건을 해결하려고 마을에 잠입한 탐정이었지. 어른이 된 내가 어쩔 수 없다고 넘겼던 수많은 순간처럼, 당신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테다. 알고 있다.
알고 있었다.

 

9월 24일. 날씨 흐림.

 아는데도, 때때로 나는 탓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탓해보고 싶었다.
그날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지만, 그 누구도 생을 보상하거나 책임져 주진 않는다는 걸 일찍이 직감했기 때문이다.

 

9월 25일. 날씨 흐림.

 동굴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내가 동경하고 사랑하여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사람들.
친구들. 선생님들. 마을 어른들. 그리고 나의 아버지.
나는 정말이지 어떤 믿음에라도 매몰되고 싶었다. 끔찍하게도 진실보다 거짓이 더욱 간절했었고, 그런 순간은 연속되는 악몽처럼 끝을 모르고 찾아들었다. 대체로 나는 괜찮았지만, 찰나가 문제였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학교에 가거나 수업을 듣거나 체육 활동을 하거나 소파에 앉거나 침대에 눕거나 낚싯대를 챙기거나 물고기를 낚거나 하는 일상의 찰나마다, 너에게 묻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게… 내게 남은 진실일 수가 있는지.
희미한 이성이 그런 문장이 적힌 편지를 우체통이 아닌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 옛날 내가 빛과 진실을 가슴에 매달고 힘을 얻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참한 현실이었다.

 

9월 26일. 날씨 흐림.

 나는 네가 남기고 떠난 그 말을 오랜 시간에 걸쳐 깊이 골몰했었다. 머릿속에 떠올려보고, 적어도 보고, 읽어도 봤다. 교과서 귀퉁이에까지 그 말을 적고 밑줄을 쳤었다.
사람이 살면서 정말 힘들 때 가장 믿어야 할 게 뭔 줄 알아?
신도 부모님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지.
그래 … 나 자신.

 

9월 27일. 날씨 흐림.

 몇 번을 적어도 그 말은 현실감 없이 아리송하다.

 

9월 28일. 날씨 흐림.

 내가 믿고 싶었던 건 온전히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무언가였다. 이 부정한 현실과 더러운 진실로부터 나를 지켜줄 거대한 존재. 그게 나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생각으로, 나는 이미 한 번 무너진 존재였으니까.

 

9월 30일. 날씨 흐림.

 그런데도… 알잖아. 우리가 헤어질 때 나는 너한테 감사를 전했지.
당시에도 나는 어렴풋하나마 깨달았던 것 같다. 네가 건넨 그 말이 나의 최선이 되리라고.

 

10월 2일. 날씨 흐림.

 세상 모든 존재는 겉으로 본들 알지 못할 뒷면을 가졌고, 신이란 뒷면을 가진 인간들의 구전으로밖엔 접할 방도가 없다.

 

10월 3일. 날씨 흐림.

그러니까 결국엔 말이야.
너에게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말이 있어.

10월 4일. 날씨 흐림.

너는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찢어버린 편지를 모아 보내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영영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잠뜰아.

 

포기하지 않고 찾아준 그 모든 진실을 원망해서 미안해.
그 무엇도 네 탓이 아니었어.

 

 

 

 

 겨울 중 가장 쓸쓸하고 달이 밝은 날에는 그 애를 위해 기도했다. 무늬만 기도지 경건한 모습은 아니었다. 기도할 때 라더는 편한 자세로 앉아 손조차 모으지 않고 두 눈을 감았다. 오소서, 달맞이 신이시여. 그따위 멘트는 결단코 지껄이지 않았다. 신이 필요할 땐 적당히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찾았다. 어른들 손에 이끌려 신으로 추앙받았던 그 애가 정말로 달맞이 신이 되고 싶었는지 어쨌는지 같은 건 그가 알지 못할 내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파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을, 라더는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감지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투영해 감히 그 애를 가엾이 여겼고 가여워하는 만큼 죄책감을 느꼈다. 양손을 맞잡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인내하기가 어려웠다.

하나님. 도영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부처님. 도영이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어디서든 제발 좀, 행복하게 해주세요.

세상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려 했던 열네 살 아이의 진실. 엘리트 탐정이 건져낸 신이 아닌 인간의 이름을 부르며 라더는 간절하게 호소한다. 고통 없는 낙원이 존재한다면 도영만큼은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몇 년을 기도해도 그 애 이름은 낯설기가 그지없다.

 

 

 

 

11월 17일.

 사실 처음에 사려고 했던 건 노트가 아니라 편지지였다.
이렇게 멀리까지 나왔으니까. 여행자가 짐을 잃어버리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니까.
여기에서라면 다 쓴 편지를 부치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려도 부채감이 들지 않을 거 같았다. 허울 좋은 망상으로 핑계를 일삼고 진실을 말하는 것만큼은 피해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가게를 나온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엉뚱하게도 편지지가 아닌 양장의 노트 한 권이었다.
뒤를 돌면 노트를 반품하고 편지지를 살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선 자리에서 포장을 뜯었고, 표지를 열어 새하얀 속지를 확인하고 말았다. 그러다 바람에 밀린 눈발이 페이지를 적시는 바람에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갔었나.
생각해보면, 내가 편지지를 사지 않은 건 순리와도 같은 일이었다. 보내지 않을 편지를 예행한다는 건 결국 홀로 간직할 기록을 늘리겠다는 뜻일 테니까.

 

11월 19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시간의 흐름 위에 변하고 마는 게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확신을 잃지 않고 믿음을 이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도 부모님도 아닌 나 자신. 크레이터 자국이 거친 뒤통수를 매만지며, 내가 아는 누군가의 뒷면이란 나의 뒷면밖에 없다는 진실을 상기해본다. 이 하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11월 20일.

 스물네 살이 되었던 작년, 나는 진로를 확정하기 전에 제대로 된 어른이 되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다. 아무리 세상이 기적적이지 않더라도, 그리하여 내게 남겨진 진실이 더럽고 초라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아간 길을 후회하지 않고 우직했던 어른이 내게 그런 사람이 되라고 말해줬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이곳 밴쿠버에 왔다.
무작정 신청한 워킹 홀리데이는 순탄하지 않았다. 이곳은 내가 상상했던 만큼 낭만적이지도, 크게 성장할 만큼 극적이지도 않다. 가뜩이나 혹독한 겨울은 끝이 보이지 않게 길고, 물이 맞지 않아 한동안 고생을 한 데다가, 소통으로 인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와서 오래간만 해변을 걸었다. 파도에 발을 담그고 두루뭉술하게 피어났던 감정들을 돌아보았고, 마침내 네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똑바로 알았다.
드디어 온전하게, 이해하고 말았던 거야.

 

11월 21일. 

 잠뜰아. 이제 나는 그 시절 나를 찾아왔던 너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내가 열여섯일 적에 스물넷이었던 너는 물론 지금도 나보다 여덟 살은 많은 어른이겠지만, 내가 아는 잠뜰은 열여섯이자 스물넷이었을 시절에 고스란히 멈추어 있으니까. 마음이 명료해지고 얼마간 나는 그 시절의 잠뜰이 너를 곱씹어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스물넷은 생각보다 많은 나이가 아니라는 걸. 울고 실수하고 자책하는… 그야말로 어중간한 나이라는 걸.
그런데도 너는 수없이 진실을 파고들고 끝없이 앞으로 나아갔지. 한시도 쉬지 않고서. 그때의 너처럼, 스물넷을 떠나보낸 나 역시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거짓에 매몰되지 않고 내가 하는 선택을 믿고 나아가리라고 믿어.
문장을 새기고 기억에 남기며 새삼스레 다짐에 다짐을 더해본다.
손에 쥔 것들은 한없이 초라하지만, 그리 여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어른이 되어보려고 해.

 

 

또 만나자고 너는 말했지.
다음이 있다면 그때는 내가 너한테 갈게.
날이 따스한 봄에 안부를 전하고, 나도 이만큼이나 컸다고 알려주려고.

 

 

 

 

 노트를 덮은 다음에서야 인사말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에 또 만나자. 떠나는 이들이 으레 건네는 그런 말들. 그러나 찰나로 남긴 종장을 번복하지 않는다. 끝을 맞이한 하나의 기록에 작별을 고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는 별개로, 이곳은 밴쿠버가 아니다. 지나간 밤을 되짚을지언정 되풀이할 순 없다.

 

 예행인지 고해인지 모를 일 년의 기록에 라더는 끝맺음을 지었다. 묽게 번진 잉크를 끌어안고 노트는 파도에 잠식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디로 도달하는가.

 방황하는 펜을 고쳐 잡고 위치를 조정한다. 공항에서 구매한 엽서를 노트에 겹치어 올리고 신중하게 획을 긋는다. 보내지 않을 기록이 아니라 너에게 닿을 편지를 준비하자. 사과와 감사를 가감 없이 전하겠다. 아직 미숙할지언정…….

 

안녕. 잘 지냈어?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탐정 잠뜰에게,
새벽녘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너의 친구 라더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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