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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다. 눈을 뜨자마자 눈앞의 모습을 보고는 단번에 꿈이라는 걸 알아챈 박잠뜰은 바로 앞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찬찬히 부서지는 파도가 그 어떤 파도보다 부드러웠고, 또한

거칠었으며 느리고 빨랐다. 바다 위로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달이 비쳐 찬찬히 부서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달빛처럼 빛나던 누군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

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달이네.

 

 

 

 

 

 

 

 

*

*

*

 

 

 

 

 

 

 

 

창문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며 방안을 환하게 비췄다. 벌써 시간은 오후 12시가 넘어갔고,

죽은 듯이 잠을 자던 잠뜰이 햇빛에 못 이겨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비집고 나오는 하품을

참으며 기지개를 켜고, 커튼을 확 걷으니 맑은 하늘 위 떠 있는 구름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 날씨 좋다.

 

창문을 여니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눈을 찌푸리다가 그대로 벽에 머리를 기대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벌써 '각별'과 '공룡'이 소멸한 지 5년이나 지났다. 둘이 소멸했다는 사실은 5년 전 바다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그 순간, 쓰러진 자신을 붙잡고 있던 라더 수호신이 알려주었다.

 

`잠뜰아 놀라지 말고 들어라.`

`겨우 살아 돌아온 사람한테... 뭔데요. 그리고 각별이는 또 어딨어요? 그 망할 공룡도.`

`...잠뜰아, 각별이는 공룡과 함께 소멸했다.`

`...네?`

 

어이가 없어서 박잠뜰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지금 누가 소멸했다고... 장난치지 말라며 소리

지르려는 순간 라더의 표정이 너무나도 슬퍼서, 그렇게 잡아 오는 손이 덜덜 떨리길래 잠뜰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래 진짜로 넌 소멸했구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슬프지도 않았던 것 같다. 갑자기 찾아온 이별이라서 그럴까?

갑자기 찾아와 멋대로 인연을 맺어 친구로 지냈으면서 이번에도 자기 멋대로 매정하게 인연을

끊어버려서 그런가. 그냥 박잠뜰은 멍하니 라더를 바라보며 덜덜 떨리는 그 손을 잡아주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에는 단 음식을 끊었다. 입에 초코케이크가 들어오는 순간 옆에서 단 거 많이 먹지

말라며 구박하는 노란 부엉이의 목소리가 자꾸 맴돌아서, 그 익숙한 노란 부엉이가 제 앞에서

째려보며 구박하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끊어버렸다. 단 음식 대신하여 평생 입에 안 댈 것

같던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잠뜰은 여전히 퇴마사로서

활동하였다. 이제는 퇴마사로 절대 활동을 못할 것 같다고 생각이 무심코 들었던 것과 달리

퇴마사로서의 활동은 더 활발해졌다. 들어오는 의뢰는 닥치는 대로 다 받아 나가고, 돈이 없어

의뢰비를 다 못 낸다고 하는 의뢰인의 말에 예전과 달리 괜찮다고 하며 아예 돈을 안 받거나

일부만 받고 의뢰를 해결하기도 하며, 하루의 시작을 의뢰를 시작하고 끝을 의뢰로 마무리 했다. 밥은 뒤로하고 하루종일 커피로 때울 때도 있었고, 밤엔 잠이 안 와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밖에 나가 야괴를 퇴마하기도 했다.

 

슬프진 않았지만 가슴 한자리가 아팠고 왠지 모를 공허함이 감돌았다. 외로움? 이걸

외로움이라고 칭해야 할까? 너의 소멸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내가 과연 외로움을

느껴도 될까.

 

모르겠다. 이게 아픈 건지 슬픈 건지 행복한 건지 마치 낭떠러지 끝에 서서 곧 떨어질 것 처럼

위태로웠다.

 

 

 

 

 

*

*

*

*

*

 

 

 

 

 

"잠뜰아, 이제 슬슬 직원 한명 정도는 뽑는 게 어때?"

 

"별로, 혼자서도 충분한데 왜."

 

 

각별과 공룡이 소멸하고 1-2년 정도 지났을까, 수현의 사무실 방문 빈도가 높아지더니, 이젠

일주일에 3번은 사무실에 들러 잠뜰을 살폈다.

별말은 없었다. 밥을 먹으라고, 잠을 좀 자라는 잔소리도 거의 없었고, 그저 잠뜰과 같이 커피

한잔 마시며 얘기하다 돌아갔다. 잔소리라도 할 줄 알았던 잠뜰은 별말 없이 돌아가는 수현이

의아했지만 편하기도 했다. 매번 사무실에 올 때 마다 잔소리를 해대는 라더 수호신 보다 차라리 이런 아무 의미 없는 얘기가 덜 귀찮았다. 수현하고는 이런 나날이 계속될 줄 알았지만, 갑자기 직원 얘기를 꺼내는 모습에 잠뜰은 고개를 기울였다.

 

 

"혼자서 하면 힘들잖아, 스케줄 관리나 그런 게. 솔직히 퇴마가 안전한 직업도 아니고, 직원 한명쯤은 있으면 좋겠지."

 

"음... 딱히 뽑을 생각 없어. 나랑 잘 맞는 사람이어야 할 텐데... 거의 찾기 힘들겠지. 그냥 혼자 다니는 게 맘 편해."

 

"그럼, 잘 맞는 사람이면 고용할 거고?"

 

"..."

 

 

수현이 웃어 보였다. 애초에 잠뜰과 가깝고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수현 밖에 없었다. 그

외에 잠뜰과 잘 맞는 사람이 더 있을까? 현재 직업도 잘 가지고 있는 애가 자신의 사무실

직원으로 들어 올리는 만무하고, 무슨 생각인지 읽어보려는 듯 잠뜰이 눈을 마주쳤다.

 

 

"덕개 기억하지?"

 

"...어, 네 사촌 동생 아니야?"

 

"기억하고 있네. 덕개가 네 팬이잖아."

 

"설마... 아니지?"

 

"덕개가 네 사무실에서 일할 생각이 있대. 마침 졸업도 했고, 좋지 않겠어?"

 

"..."

 

"강요는 아닌데, 잘 생각해봐. 솔직히 난 덕개 괜찮다고 보거든"

 

"그래도,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ㄷ,"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별 말 안 하긴 했는데 요즘 상태 정말 안 좋아 보이거든? 이대로 가다간

너 몸 진짜 다 망가져."

 

"..."

 

 

지금이 한계라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잠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계라니, 그 말이 수현의 입에서 나온 순간 바로 느꼈다. 지금이 한계라고, 하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잠뜰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로 한계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보다 황수현이 먼저 느낀

건가. 하필이면 마주친 눈빛이, 창밖에서 쏟아지는 햇빛에 닿아 밝게 빛나는 주황빛 눈동자가

무심코 누군가를 빗대어 생각하는 바람에  일단은 데려와 봐.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몇년만에 다시 만난 덕개는 열심히 하겠다며 소리쳤고, 잠뜰은 그냥 다치지 말라고 당부하곤

말았다. 적당히 데리고 있다가 다른 곳에 이직시켜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보기완 다르게 야무지고 깔끔하게 일 처리를 하는 덕개의 모습에 잠뜰도 좀 더 같이 일해볼까 라는 마음으로 계속 두다

보니 어느새 덕개는 잠뜰 사무소의 하나밖에 없는 직원이 되어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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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덜컥, 탁.

 

 

 

"어라, 일어나 있으셨네요. 저는 아직 주무시고 계실 줄 알았어요."

 

"...이제는 내 집에 들어오는 게 자연스럽다?"

 

"이미 문 여는 소리 다 들으셨으면서~"

 

 

너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현관문 벨 소리와 함께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커피를 내리고 있는 덕개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라떼."

 

"네~ 설탕은 한 개만 넣어드릴 거예요."

 

"왜?"

 

"왜냐뇨, 이제 당 관리하셔야죠."

 

요즘 설탕 너무 드세요. 이제 밀에 여우 카페에서도 초코케이크 일주일에 한 번만 사드세요.

참나, 너가 퇴마사 해라 덕개야.

그 말에 웃던 덕개가 커피를 내밀었고 익숙하게 받아 평소보다 덜 달게 타진 라떼를 마셨다.

덕개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좀 여유가 생겨서 생각할 것이 많아지다 보니 그 생각을 멈추려

다시 단 음식을 입에 대다 보니, 겨우 끊은 초코케이크도 다시 먹게 되었다. 다만 과거와 달리

잔소리 하는 사람은 덕개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

 

 

"원래 오늘 잡혀있던 퇴마 상담 있죠? 그거 취소 되셨어요."

 

"왜?"

 

"귀신 들린 줄 알고 바로 상담 잡은 거였는데 사실 아픈 거였데요. 병원에 지금 입원 중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 그럼 그거 말고 다른 스케줄 있었나?"

 

"아뇨, 없어요. 오늘은 쉬시면 될 것 같아요."

 

"그렇구나... 그럼 너도 오늘은 일찍 퇴근해."

 

 

어느새 다 먹은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으며 잠뜰이 스트레칭을 했다. 일도 하나 없이 쉬는 건

오랜만이라 그냥 잠이나 더 잘까. 생각하다가 오늘 꾸었던 꿈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 바다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나는 바다는 하나 뿐이었지만 굳이 그 바다를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른 바다...

부산이라던가, 강릉...

일단 바다가 끼어있는 지역을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어 검색했다.

 

 

"그럼 전 퇴근할게요. 밥 꼭 챙겨 드시고, 단 거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어어 알겠어. 쉬어."

 

 

어디서 배운 건지 갈수록 늘어가는 덕개의 잔소리를 대충 흘려들으며 손을 휘적거리며 흔든

잠뜰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은 덕개가 내일 봬요. 한마디를 남긴 채 집을 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또 혼자. 열심히 검색 해보다가 지쳐 결국은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둔 잠뜰이 두손에 얼굴을 묻고 마른세수를 했다.

 

 

"이거... 갈만한 곳은 거기 한 곳 밖에 없네."

 

 

그냥 가볼까?

그 일로 5년. 약 5년 가량 바다의 ㅂ조차도 잠뜰의 입에서 나온 적이 없다. 또한 가고 싶은 마음도 추호도 없었거든. 하필이면 오늘 꾼 꿈이 바다라서, 우연히 오늘 잡혀있던 일 조차 취소되어서

그렇다. 그래서 그래. 내가 그 바다에 가는 이유는 이것 뿐이야. 그렇게 자기 최면을 걸며

기차표를 예매했다. 이렇게 된 이상 가서 이 원인 모를 먹먹하고 답답한 가슴을 그 바다에서

해소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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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자리가 남아있는 시간대가 저녁밖에 없어서 저녁으로 예매하여 보니 이래도 괜찮나 정도로 기차 안에는 사람이 적었다. 보통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하면 부산이나 강릉으로 가면 갔지 지금 가는

지역은 별로 바다가 유명하지도 않아 바다를 보러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많은 좌석이 있는

기차칸에 부자연스럽게 홀로 앉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어차피 가봤자 3~4시간 뒤에는

다시 올라와야 한다. 극히 효율성이 떨어지는 당일치기 여행에 잠뜰은 껌껌한 풍경 속 마치 별

처럼 빛나는 건물들의 불빛을 보여주는 창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을 감았다.

 

 

 

 

 

 

 

 

*

*

*

 

 

 

 

 

 

 

 

솨아아...

 

바닷물이 밀려 발목을 감쌌다. 밤하늘이 비쳐 굉장히 차가워 보이는 검푸른 바닷물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미지근했다. 귓가에는 바닷물이 밀려오는 소리와 파도가 철퍽이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멍하니 제 발목을 감싸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굉장히 아름다운 보름달이 바다에 비쳐

떠올라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분명 보름달이었던 달은 어느새 초승달의 모습이 보이고 초승달과 겹쳐 천천히 떨어지는 익숙한 노란색의 깃털이 그대로 바닷속 보름달 위에 안착하는데,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이거 꿈이구나.

 

 

 

 

 

 

 

 

*

*

*

 

 

 

 

 

 

 

 

눈을 떠보니 껌껌한 풍경 속에서도 별 처럼 빛나던 건물들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 이제는 암흑밖에 없는 창밖과 곧 도착하니 내릴 준비 하라는 안내 방송이 잠뜰의 귓가에 울렸다. 뻑뻑한 두 눈을 비비며 얼마 없는 짐을 챙기고서는 내릴 준비를 하니 얼마 안 지나, 역에서 멈춘 기차에서

내렸다. 살짝 차가운 공기가 잠뜰의 몸을 스쳐 지나가며 소름이 돋는 팔을 두손으로 쓸어내리며 바다로 향했다.

모든 것을 삼키고선 도망친 그 바다로.

 

 

 

 

 

오랜만에 맡는 바다 내음은 비렸고, 짰다.

꿈에서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괜시리 꿈을 들먹이며 모래사장에서 발을 차 모래를 흩뿌렸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기차에서 꿨던 꿈을 생각하니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왜 하필 바다 였을까. 망설임 없이 신발을 벗은 잠뜰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차가울 줄은 알았지만 상상 이상의 차가움에 황급히 바다에서 발을 빼며 인상을 찌푸렸다. 살짝 젖은 무복은 쨍한 빨간색에서 검붉게 변하고 물을 머금어 무게감이 느껴지는 무복의 끝자락이 그대로 모래사장에 끌려 모래가 덕지덕지 묻었다. 생각 없이 입고 온 무복과 같이 챙겨온 월광검은 모래사장 가운데 꽂혀있는 달빛에 반짝 빛났다.

 

 

"오늘이 보름달이 뜨는 날인가?"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니 별 하나 없는 깜깜한 밤하늘 그 위에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전보다 더 밝게 빛나 보이는 달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파도가 발목까지 밀어 올라와 묻은 모래를 쓸어내리며 물러났다. 어느새 여기까지 파도가 밀려온 건지 잠뜰이 벗어놨던 신발을 눈으로

찾아보지만 이미 바다가 가져갔는지 어디에도 안 보였다.

 

 

"...이젠 신발까지 가져갔네."

 

 

5년전 그 일이 바다의 탓이 아닌걸 알지만 어째선지 계속해서 바다의 탓만 하고 있다. 잠뜰은

월광검이 꽂혀있는 앞까지 다가가고는 뽑아 손에 들고는 파도가 밀려오는 앞에 섰다. 밀려오는

바닷물에 모래가 잔뜩 묻은 발을 씻기며 처음보다는 나름 기분 좋은 차가움에 괜히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파도는 어느새 밀려들어 와 발목에서 무릎까지 올라와 적셨다. 젖은 무복은 파도 속에서 찰랑이고, 월광검은 그 파도를 갈랐다.

 

꿈속 장면 처럼 파도가 밀려들어 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 위에는 유난히 큰 보름달이 떠올라 있으니, 그 보름달이 바닷물에 비치는데 파도에 부딪혀 부드럽게 깨졌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한숨 소리가 파도 소리에 묻혀 흩어지며 괜스레 잠뜰은 월광검을 쥐고 있는 손을

들고는 달이 비치는 바닷물에 내리 꽂았다. 찰랑이며 깨졌던 보름달은 언제 깨졌다는 듯이 다시 본래의 모습을 비쳐 보였다. 무릎까지 왔던 물은 어느새 허벅지에서 찰랑이고, 달 가운데 세워진 월광검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각별이는... 이제 없어. 나도 이제 알아. 이젠 난 괜찮아. 정말로."

 

 

갈 곳 없는 문장이 잠뜰의 귓가에 파고들며, 떨어지는 눈물은 보름달의 한 가운데를 가르는

월광검 위로 떨어진다. 손에 들린 월광검으로 몇번이고 바다를 갈라 보름달을 베어보려고 해도, 결국에는 멀쩡히 비치는 보름달의 모습에 월광검을 그대로 바닥에 꽂았다. 

바다가 싫었다. 이 바다가 각별이를 가져갔으니깐, 각별을 언젠가는 보내야 했다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 말 한마디도 못 하고 가는 모습도 못 본 채로 보내는 상황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정말...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었어, 최소한 너를 이 바닷속에서 차갑게 소멸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눈물이 자꾸만 났다. 막을 생각도 못 하고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잠뜰의 뺨을 타고 흘러내려

월광검에, 그대로 바다에 빠져 적셨다. 한번 나온 말은 멈출 새 없이 새어 나오고, 잔잔했던 파도 또한 점점 거칠어지더니 빨간 무복을 흠뻑 적셨다.

계속 생각했다. 내가 빙의가 안 될 만큼 힘이 더 강했더라면, 네가 최소한 이렇게 소멸하진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자꾸만 눈물이 비집고 들어왔다. 목 놓아 울고

싶은데 울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 손을 들어 눈을 비비지만 멈출 생각이

없는 눈물을 바닷속으로 자꾸만 스며들어 갔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에게 계속하고 싶었던 말이야. 각별아 미안해. 울면 안 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

 

 

바다에서 소멸했으니깐. 눈물이 이 바다에 떨어지면 각별이 내가 우는 것을 알겠지. 이런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바다는 계속해서 파도를 일으키고 차가운 물이 잠뜰을 적셨다. 바다 위에 뜬 보름달 또한

구부러지며 흩어지다 모이기 반복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필사적으로 잠뜰은 이를 악물었지만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흐느낌이 그대로 바다의 보름달에 닿았다. 귓가에 울리는 흐느낌이 너무나도 듣기 싫어서 두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이제는 너에게 닿지 못 할 말이지만... 만약 네가 날 보고 있다면, 듣고 있다면, 고마웠어.

진심이야. 이건 내 진심이야 각별아. 진심으로 고마웠어."

 

 

형용할 수 없는, 제대로 단어조차 못 되어 나오는 말이 고요한 바다에 울렸다. 고맙다. 미안하다. 그 두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며 잠뜰은 울었다.

어느새 거센 파도가 잔잔해지고, 꿈속에서 처럼 바닷물은 미지근했다. 불어오는 바람조차

따뜻해서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울던 잠뜰이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찬찬히 부서지는 파도가

펼쳐졌다. 그 파도는 어떤 파도보다 부드러웠고, 또한 거칠었으며 느리고 빨랐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보름달이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밝게 빛나 잠뜰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눈물이 멈추진 않고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어딘가 후련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한참을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렇게 치는 파도마저 이렇게 부드러웠나 싶은 순간에 파도가

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귓가에 잠뜰아. 라는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익숙한 목소리와 말투에 순간적으로 각별이가 부른 것 같아 눈을 슬며시 떴다.

 

 

"..."

 

"잠뜰아."

 

"수호신님..."

 

"...날이 춥구나, 이만 돌아가자."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파란 머리칼의 라더가 서 있었다. 아직 흐르는 눈물이 라더의 눈에 똑똑히 보였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바다는 미지근했다. 불어오는 바람도 따뜻했다. 파도도 무척 부드러웠다. 다만 흐르는 눈물만큼은 차가웠다.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잠뜰이 월광검을 손에 들었다.

 

 

"언제부터 계셨어요... 제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춥진 않느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잠뜰이 멈추지 않는 눈물에 손을 떨궜다. 고개가 내려간 채 덜덜 떨리는

손을 감싸고서는 숨을 고른 후 얼굴을 들어 라더를 바라보았다. 꿈이 아니다.

 

 

"수호신님... 있잖아요... 저,"

 

"다음에도 오자꾸나."

 

"..."

 

"혼자는 힘들 테니, 내가 같이 가주마.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잠뜰아."

 

 

손을 내미는 라더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으니 등을 밀어주듯 파도가 잠뜰의 등을 밀었다. 무심코 뒤를 돌아봤지만 넓은 바다 위에 보름달 하나만 보이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몸을 돌린

잠뜰이 라더와 눈이 마주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대 라더와 함께 천천히 바다에서 나오니

미지근했던 바닷물이 차가워지고, 따뜻했던 바람은 점점 차가워지고 매서워졌다.

 

모래사장으로 나오니 축 늘어진 무복이 무겁게 바닥을 끌었고, 월광검이 바닥을 질질 끌었다.

바다에 나오니 한순간에 훅 추워지며 체온이 낮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눈물을 닦으며 모래사장에 주저앉은 잠뜰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호신님. 제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꿈을 꿨다. 네가 바다에 떠날 생각을 안 하니 좀 데리고 가라고 하더라"

 

"누가요?"

 

"누구겠니."

 

"...너무하네, 내 꿈에는 한 번도 안 나타나 줬는데."

 

"잠뜰아."

 

"..."

 

"각별이가 그렇게 소멸한 건 네 탓이 아니다. 그리고 각별이도 네가 고마워하는 걸 알 거다."

 

"......역시 처음부터 계셨던 거잖아요."

 

 

무릎을 끌어안고는 거기에 얼굴을 묻은 잠뜰이 꿍얼거리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라더가 잠뜰의 옆에 똑같이 주저앉으며 투박하게 등을 토닥였다.

... 하지 마세요.    일부로 들은 것이 아니다.      알아요...

 

의미 없는 말만 오가고 있으니 어느새 하늘 위에 떠 있던 보름달이 내려가고 태양이 올라왔다.

밝은 태양이 모래사장을 밝게 빛내며 고개를 살짝 든 잠뜰은 눈부셔 인상을 찌푸렸고, 라더 또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벌써 아침이구나, 돌아가야지."

 

"..."

 

"좀 괜찮아 졌느냐? 후련해지진 않았느냐?"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파요."

 

"그래... 괜찮아지며 같이 돌아가자."

 

그리고, 다음에는 다 같이 오자.

 

 

울어서 새빨개진 눈을 한 잠뜰이 고개를 들어 라더를 바라보며 슬쩍 미소 지으며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고, 그 모습에 확답하듯이 라더도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잠뜰은 바다 탓을 하는 날은 없었다.

 To. 밤하늘의 별처럼 유영하는 잠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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