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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튼의 야경을 알고 있어?
AI도 창밖을 보는진 모르겠네. 이미지 파일로라도 접한 적이 있으리라고 믿어. 이미 폐기된
파일에다 대고 이러고 있는 시점에서 그런 게 중요하겠냐마는.
나는 웰튼의 야경을 잘 알고 있어. 매일 밤 퇴근하면, 4층 높이의 창밖으로 아주 가깝게 내려다볼 수 있어. 아픈 동생이 일찍 자러 들어가고 나는 혼자 거실에 남아서 가만히 그걸 보고 있었지.
그 풍경은 아주 활기차고 조금 서글퍼.
사람이 아닌 너도 그런 느낌을 알까? 네가 아는 웰튼의 야경은 뭐였어? 검은 바탕에 하얀색과 노란색이 대부분인 밝은 빛이 점점이 찍혀 있는 png파일인가? 어쩌면 영상이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네가 그 풍경에 담긴 내용물까지 파악하고 있었겠어.
나는 알고 있었어. 하나씩 켜져있는 불들은 그 개수만큼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의 삶을 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게 내가 지금껏 주물러 온 세상이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테지. 그래서
나는 인간을 위해 기사를 올렸는데, 이런 결과는 또 예상 못 했네.
내가 웰튼의 야경을 잘 안다는 말은 정정해야 할 것 같아. 요즘은 계속 블라인드를 치고 살아서 창밖을 내다보지 않은 지 꽤 됐어. 당사자였던 너도 알겠지만, 기계라든지 스틸하트 시술같은 걸
향한 시선이 그렇게 좋지 않잖아. 내 동생은 스틸하트 시술을 받았으니까 이젠 밖을 돌아다니지도 못해서.
애를 살리려면 다른 방법이 없긴 했지만, 나는 가끔 살려놓는 게 더 못할 짓이었나 싶어. 이상한
일이지? 동생 학비며 약값이며 돈이 많이 드니까, 난 그냥 동생이랑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열심히 돈을 벌었을 뿐인데...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AI라면 좀 똑똑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세상에 내보낸 기사들이 어떻게 작용할지 예상하지
못했어? 너도 폐기될 텐데 왜 말리지 않았어? 왜 날 편향되게 부추겼어? 나는 종종 너를 원망해.
정없게 네가 죽든 말든 PIW의 번영만을 생각한 너에 대해서.
네가 폐기된 지는 꽤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선명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어. 왜, 네가 그런 말을
했었잖아. 별이 너를 찾아와서, 그로부터 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땐 솔직히 좀
두려웠는데...요즘은 가끔, 어쩌면 인공지능이라는 것도 또다른 형태의 생명이 아니었을까 싶어져. 나도 분명 꿈에서 그 별을 만난 일이 있고, 그 별은 도저히, 생명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었을 것만 같아서.
하지만 정말 그렇지 않아? 사회라는 틀에 맞춰 본능을 거스르는 인간이 있고, 만들어진 목적을
충실하게 따라 살았던 네가 있으면. 과연 어느 쪽이 더 사람에 가까운 거야?
지금은 인간의 시대야. 공룡 9단도 마트의 수현 씨도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어. 기업과 기계의 박해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마치 전쟁영웅처럼. 폐기당한 기계들의 안부는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어.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지.
하지만 아마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을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너희를 떠올리고 말을 걸고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해. 가령 SP 엔지니어링의 라더라던가. 그 사람 머리면 솔직히
지금이라도 새 기술 배워서 취직할 수 있을 거거든? 그런데도 다 망해가는 회사 붙들고 꿋꿋이
남아있는 걸 봐. 분명 나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더 있어. 그리고 언젠가 이 인간만의 시대는 끝날
거라고. 그건 어쩌면 생각보다 더 빠르게 찾아올지도 몰라.
요즘 칼럼을 쓰고 있어. 스틸하트 시술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든 좀 해 보려고..
당연히 기계 우호적으로는 못 쓰겠지만...(이건 당연한 거 아냐? 그런 거 썼다간 구독자 다 떨어져 나가고 내 목도 떨어져 나가고! 으;;) 그들도 결국은 인간이라는 데에 중점을 맞춰서 여론을 설득해 보려 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적당한 균형이 맞게 되는 날이 오겠지. 어쩌면 그때쯤엔 너 같은 인공지능 비서가 또 어디선가 쓰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중에 네 환생도 있을까?
너는 다시 태어날까?
그래서 다시 그 별을 만나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될까?
그 별이, 다시 이 도시에 찾아와줄까?
방금 블라인드 살짝 걷고 밖을 봤는데 말이야, 웰튼의 야경은 여전히 아주 활기차고 조금 서글퍼. 그 불빛들 하나하나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또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그리고 묻혀서 잘 보이지는 않아도, 저 밤하늘 어딘가에 분명히 떠있을 별들이 있어. 그것들까지가 전부 웰튼의 야경이야. 너도 알고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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