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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
잠뜰은 닫힌 문에다 대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기다리고 있을 강아지에게 이 참담한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참 막막했다. 물론 덕개는 지금 제가 문밖에서 들어오길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겠지.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빨리 전해야 준비 기간도 길어지니까. 곧 그 사람들도 올 거고. 어차피 돌이킬 수도 없으니 망설이지 마! 가자, 박잠뜰!
쾅!
" 팀장님 오셨어요? "
잠뜰은 흰 나무문을 세게 밀어젖혔다. 간식으로 쟁여뒀던 육포를 잘근잘근 씹던 덕개가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건넸다. 참 여유롭구나. 팀장은 지금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고통받고 있는데 말이야. 잠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눈치를 살살 보다가⋯ 기다란 육포를 이로 끊어 빠르게 삼켜버린 덕개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를 위아래로 훑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꾸며내다니. 눈치가 빠른 거야, 아니면 더럽게 없는 거야?
" 팀장님, 무슨 일 생겼어요? 아까 바로 안 들어오시고, 밖에서 한숨만 쉬고. 표정도 안 좋으시네. "
" 덕개야. "
" 네? "
" 놀라지 말고 들어. 심해 탐사대는⋯ 곧 해체될 거야. "
" 네? "
잠뜰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듯한 한 단어를 끝으로 말이 없어진 덕개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하기가 무서웠다. 조금 촐싹대고 그러긴 해도 저만큼이나 바다에 진심이었던 아이인데, 팀이 사라지고 나면 연구소에서 나가야 하고, 그 후론 바다의 비읍자도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전하면 크게 상심할까 봐서.
" 아니, 어째서요? 없는 지원비 꾸역꾸역 끌어모아서 실적 내왔더니, 갑자기 해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
예상처럼, 인상을 찌푸린 덕개가 슬며시 눈을 뜨며 되물었다. 고뇌로 잠겨가는 표정과는 반대로 점점 커지는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잔뜩 묻어나왔다. 잠뜰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곤 조용히 눈만 깜빡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화내지 말아야 할 텐데.
" 요즘 일거리가 잘 안 들어왔지? 이미 작정하고 있었던 거야, 그놈들은. 부족한 실적을 핑계로 아예 없애버리려고. "
" 아니, 왜 갑자기 일이 줄었나 했더니! 몇 달을 매달려서 스카우트하더니 이게 뭐야⋯. 안 그래도 팀에 두 사람뿐이라 전부 발로 뛰어야 하는 걸 교통비도 지원 안 해주더니, 이젠 그냥 해체해 버리겠다고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
" 어쩌겠어. 그 정도 실적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나 보지. "
의자에 털썩, 하고 몸을 던진 덕개는 노발대발하며 발을 굴렀다.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는 게 아주 투명하게 보였다. 뭔 별의별 미스터리 같지도 않은 해괴한 소문들 모아올 때부터 알아봤다고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하소연하던 아이는 열 내느라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 ⋯⋯팀 해산하면, 저흰 어디로 가요? "
" 그렇게 되면 소장님이 사무직 쪽으로 자리 마련해주신대. 그 정도가 한계라고 하시더라. 그게 싫으면 백수 신세가 되겠지? "
" 욱. 사무직 싫은데⋯. "
" 응, 나도 그래. "
그래도, 돌파구가 아직 있으니까. 아직은. 잠뜰은 쓰게 웃으며 두 손으로 덕개의 어깨를 탁탁 쳤다. 위험 속에서 허덕일 때마다 항상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던 문구를, 부족한 팀장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와 준 소중한 조수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너도 나만큼 바다를 사랑하니까. 바다가 아니면 안 되니까.
" 알잖아. 우리는⋯ 바다를 사랑해서, 바다에서 살고 있으니까. 뭍에서 말라 죽고 싶진 않지? "
잠뜰은 호선을 닮은 눈을 마주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하게 내뱉었다. 눈꺼풀 사이로 살짝 보이는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입술을 달싹이던 덕개가 이내 앙다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밀색 머리칼 아래로 보이는 강아지 귀가 쫑긋거렸다.
" 그럼요. 당연한 걸. "
역시 내 조수! 나랑 마음이 참 잘 맞는다니까. 잠뜰은 덕개의 등을 팍팍 두드렸다. 솜이 꽉 찬 이불을 내리치는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났다.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아파하는 강아지를 두고, 잠뜰은 재킷 주머니에 넣어 뒀던 작은 사진을 꺼냈다. 에메랄드와 사파이어의 두 색채를 가진, 강렬한 파도가 인상적인 바다였다.
" 자, 다음 바다는 이곳이야. 아직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
" 와, 색깔 진짜 예쁘다. 차가운 바다⋯. "
사진을 건네받은 덕개가 사진 아래에 적힌 작은 글씨를 손으로 쓸었다. 잠뜰은 처음 사진을 찾아냈을 때 느꼈던 설렘을 떠올렸다. 한없이 차가운 바다. 별 미사여구도 없는 단순한 단어의 나열이지만, 오히려 그 꾸밈없는 모순이 가슴을 뛰게 했지. 그 어느 바다보다 열정적으로 파도를 보내면서 이름은 차갑기 그지없다니, 얼마나 멋져!
" 여기가, 우리의 마지막 바다가 될 수도 있는 거죠? "
" 맞아, 정확해. 임팩트 있지만 그런 만큼 위험하고 그러니까 단단히 준비하고 가야 해. 안 그럼 우리 첫 탐사 때 봤던 그 움직이는 해골 아저씨처럼 될 수도 있어. "
" 어음. "
" 아, 차가운 바다니까 눈사람이 되려나? "
" 아, 걔 귀여웠는데. 그래도 얼어 죽을 거면 차라리 한 입 거리 상어 밥이 되는 게 낫겠어요! "
" 그렇지? 나도 그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 "
잠뜰은 덕개와 함께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탐사 직전만 되면 긴장을 푸느라 서로 이런 농담을 자주 던졌는데, 이것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마냥 웃기다 여길 수도 없었다. 눈꼬리에 맺히다 만 눈물을 손가락으로 슬쩍 걷어낸 후에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 자, 탐사는 이틀 뒤야. 그때까지 뭘 해야 할까? "
" 어⋯,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한다? "
" 틀렸어. 바다에 대해 조사해야지! 얼른 자료실 가서 있는 거 없는 거 싹 다 긁어온다, 실시! "
" 시, 실시? "
잠뜰은 어정쩡하게 일어선 덕개에게 큰 메신저백 하나를 안겨주곤 쫓아냈다. 복도에서 우는 소리가 울렸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조사 잘 해와야 한다, 조수야. 우리가 성공해야 팀이 존속될 수 있다고. 그래. 이번에 성공하기만 하면, 물 밑으로 가라앉은 실적까지 전부 걸고넘어질 거야. 복수할 거라고! 잠뜰은 전의를 불태우며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새 팀원들을 맞이하러 갈 시간이었다.
음, 개판이군. 위기에 봉착한 와중에 상황이 이렇게 꼬이면 어떡하지? 잠뜰은 잠수복을 껴입다 말고 의자에 앉아 깊게 고민했다. 눈앞에는 익숙한 조수 강아지 하나와 거의 초면에 가까운 두 사람이 서로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나마 토양 연구 1팀 소속이라던 수현은 자원해서 파견 나왔다는 게 거짓이 아닌지 덕개와 죽이 척척 맞아서 말도 빠르게 놓고 의견 통합이 나름 잘 됐지만, 엔지니어인 공룡은 처음부터 애매하고 불량한 태도로 덕개에게 반감을 샀다가 지금은 서로를 거의 원수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 그러게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이 위험한 심해에 대체 뭐가 있을 줄 알고 그렇게 막 들어가는데? "
" 이 정도는 약과죠, 형. 조용하잖아요? 히드라 같은 거라도 안 나왔으면 딱히 위험하진 않아요. 좀 어두워서 그렇지. "
"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문제는 그 어두운 심해에 잠수정의 램프가 안 먹힌다는 거지! 뭔 이딴 게 다 있어? 저 외부등은 내가 선배라는 이름의 구두쇠들을 달달 볶아서 겨우 얻어낸 최신품이라고! "
우리는 이게 일상이지만 저 둘한테는 무서울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저렇게 화만 내서 풀리는 것도 없는데. 이상 현상을 뭐라 설명할 수도 없고. 난감하네⋯. 잠수정의 엔진을 천천히 끈 잠뜰은 무릎에 팔을 대고 턱을 괸 채 싸움을 구경하다가, 중간에 끼어서 허둥대고 있는 수현에게 손짓해 불렀다.
" 네, 팀장님. "
" 수현 씨, 거기 끼어서 고생하지 말고 이리 와요. 그냥 내버려둡시다. 저건 우리가 어떻게 못 해요. "
"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제가 말린다고 끼어들어서 그만 좀 하라고 소리라도 질렀다가 저까지 말려들면 팀장님만 힘드시니까요. "
오, 소리를 지르려고 했어? 꽤 성깔 있구나. 잠뜰은 헛기침 몇 번으로 감탄한 얼굴을 감추고 물었다. 탐사를 나서기 전엔 덕개와 자신 모두 불안과 긴장으로 날 서 있어서 물어볼 타이밍을 잡지 못했던 것들을 입에 담았다. 뭐, 적당히 신상 같은 거.
" 수현 씨는 자원해서 여기 오신 거라면서요? "
" 네, 맞아요! 연구 부서 유일 지원자. 그게 바로 접니다. 후후. "
" 전 기껏해야 해상 쪽 팀에서 막내 짬처리나 시킬 줄 알았는데, 직접 지원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
" 개인적인 이유예요. 여러분의 성과를 눈여겨 보고 있었거든요. 하하, 특히 첫 탐사의 순록의 정원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
" 아. 뭐, 그것도 토양이긴 하지⋯. "
" 정말 신비롭던데요! 어떻게 그 부분만 쏙 가라앉았는지, 토양 상태는 어떤지, 식물 종류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게 많아서요. 사진 하나로는 전부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아, 혹시 다시 갈 일이 있을까요? "
" 음, 이번 탐사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한 번쯤은? "
여전히 서로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대는 둘을 보며 말하자 사이에서 난처한 웃음이 흘렀다. 참, 그러고 보니 인어⋯ 라더 씨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좀 이상한 사람이긴 해도 히드라 잡는 것도 도와주고 헤어질 땐 인사도 해줬는데. 편지라도 한번 띄워볼까? 잠뜰이 추억에 잠겨 대화가 끊긴 사이에 공룡이 다가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 팀장님. 외부 전등이고 뭐고 아예 못 쓰는 것 같은데, 탐사는 대체 어떻게 해요? 일단 이 거지 같은 곳에서 좀 벗어나고 싶은데. "
" 원래 심해라는 게 그래요. 어둠이 워낙 짙다 보니 빛이 다 먹혀버리거든. 오히려 더 내려가면 형광 물질이나 빛을 내는 생물들도 있으니 여기보단 다닐 만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
덜컹,
우웅—.
잠뜰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몸을 돌렸다. 점프슈트처럼 허리춤에 걸린 잠수복을 끌어 올리며 한 손으로 패널을 조종해 잠수정의 시동을 켰다.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 잠수정이 점점 가라앉았다. 이동을 시작하자 마음이 좀 풀린 듯 공룡이 코웃음 치며 옆의 의자에 몸을 던졌다. 의자가 끼이익, 하고 죽는 소리를 내며 빙빙 돌았다.
" 아, 진짜 그놈의 가위바위보만 아니었어도! 팀장님, 제가 떠밀려 온 게 억울해서라도 꼭 성공해서 나가야겠어요. 그래서 잠수정 수리에 개조까지 무상으로 해준 거니까 저한테 잘하셔야 해요. "
" 떠밀려 오신 거였어요? 저희 잠수정 보고 워낙 적극적이길래 원해서 온 줄 알았는데. "
" 그건, 미지의 탐사선이 보고 싶기도 했고⋯ 그쪽 잠수정 상태를 보니 좀 심각하길래. 그거 그대로 타고 가면 파도에 치이고 암석에 치이고 난리도 아니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그거 아니더라도 내려가면 수압 때문에 얼마 안 가서 찌그러질걸요. "
" 점검을 오래 못 받긴 했는데. "
" 그래 보여요. "
이게 다 지원 안 해준 그놈들 탓이지. 에휴. 잠뜰은 갑자기 솟아오르는 빡침을 심호흡하며 가라앉혔다. 파도에 치여서 탐사를 못 할 수준이 됐는데도 멀쩡하다고 점검을 안 해줬던 거라 이거지? 올라가면 다 죽었어. 잠뜰이 남몰래 씩씩대며 분을 삭이는 사이, 공룡은 따분한 얼굴로 발장난을 치며 말했다.
" 뭐 아무튼, 재능 기부 하러 간다는 느낌으로 온 거예요. 저는 자타공인 엔지니어 팀 최고의 아웃풋, 다신 없을 인재라고요. 이런 기회 흔치 않으니 영광으로 아세요. "
" 그래⋯. 고마워요. 공룡 씨 아니었으면 탐사는 오지도 못하고 팀 해체됐을 테니. 내가 감사해야지. "
" 네, 좋아요. "
신나는 목소리로 수긍한 공룡이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덕개가 수현에게 재수 없어,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잠뜰은 속으로 한숨을 일백 번씩 삼키면서 조종간을 잡았다. 이젠 정말 탐사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였다. 팀원들이 모두 제자리에 앉은 걸 확인하고, 엔진의 출력을 높여 속도를 냈다. 시작은 좀 꼬였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
왜⋯ 아무것도 없지? 분명 아까 물고기 몇 마리 정도는 있었는데. 왜 기다란 해초밖에 없냐고. 잠뜰은 새하얘져선 저 밑으로 추락하려는 정신머리를 겨우겨우 붙잡아 둔 채 유리창 너머 펼쳐진 짙은 파란색의 세계를 엿봤다. 있는 거라곤 흔들리는 해초 몇 줄기와 물뿐. 생명체라고는 저희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런 경우는 오랜만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땀이 차고 있는 손에 힘을 줘 조종간을 꽉 붙잡았다.
" ⋯저기 팀장님, 잠시만요.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아까보다 더. "
팀원들도 마찬가지인지 내부 공기가 술렁였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 공룡이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다가왔다. 다른 두 사람도 걱정이 이는지 쭈뼛대며 말을 붙였다.
" 그러게요. 동굴도 아닌데 어둡고, 물색도 좀 이상해. "
" 덕개야, 저기 밑바닥도 봐 봐. 뭔가⋯ 덮여있는 것 같지? 창이 작아서 모르겠어. 내려서 봐야 할 것 같은데. "
" 팀장님, 어떡할까요? "
잠뜰은 눈을 굴리며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주변 풍경을 훑었다. 협곡 한중간이라 위치가 좀 애매하긴 한데, 더 내려가는 것도 위험하니까. 여기서 잠시 멈추는 게 좋겠어. 잠뜰은 잠수정을 잠시 세워두고 일어나 좌중을 둘러봤다. 굳은 표정들을 하나씩 마주하고, 심사숙고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 잠시 짧게만 탐사하고 빠져나가자. 사진도 좀 찍어두고. 위험하니까 올라가서 자료를 두고 비교해 봐도 나쁠 건 없, 악! "
쿵!
쾅——!
" 흐아악! "
" 미친! 뭐야, 다들 꽉 잡아요! 팀장님! "
잠시간 허공에 붕 뜬 잠뜰은 재빠르게 의자를 붙잡고 버텼다. 바닥 면에 고정된 의자에 달라붙은 상태에서 손을 뻗어 화면을 조작해 바깥 상황을 살폈다. 크고 검은 무언가가 비틀거리며 잠수정을 지나치고 있었고, 밀려난 잠수정은 그대로 절벽에 박혔다가 튕겨 나가고 있었다! 전면을 가득 채우는 빨간 경고 표시를 확인한 잠뜰은 마찬가지로 책상 같은 걸 붙잡고 악을 쓰는 팀원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 잠수정이 절벽에 부딪혔어! 꼬리 프로펠러가 망가져서 위로 뜰 수가 없으니 일단 다들 아무거나 붙잡고 충격에 대비해! "
" 네, 네! "
" 에이씨, 이게 뭔 상황이야 대체! "
쿠구궁—.
쿵——.
공룡이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쾅쾅 내리쳤다. 철판이 공명하는 소리와 함께 잠수정이 서서히 느려지며 천천히 추락하다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뭉툭한 앞머리가 물컹한 젤리 같은 것에 빠져 찌그러지진 않았지만, 깊숙이 박힌 데다 프로펠러도 고장 나 탈출이 요원할 듯싶었다. 잠뜰은 낯빛이 어두운 동료들을 다독이며 창 너머로 바닥을 살폈다. 아까 수현 씨가 본 게 정확했네. 뭔가 덮여있잖아?
" 팀장님, 왜 절벽에 부딪힌 거예요⋯? "
" 뭔가가 잠수정을 치고 지나갔어요, 수현 씨. "
" 네? 엄청 흔들리던데 저희 잠수정 찌그러진 건 아니겠죠? "
잠뜰의 말에 수현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잠수정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발을 동동 구르는 걸 공룡이 나서서 말렸다. 흘긋 본 공룡의 얼굴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잠뜰은 잔뜩 나타난 빨간 창을 치우고 잠수정 점검 시스템을 켰다. 찌그러진 곳은 없었지만 망가진 꼬리 프로펠러와 바닥에 처박힌 앞머리가 마음에 걸렸다.
" 아까 부서진 프로펠러만 빼면 일단 크게 망가진 곳은 없어요. 여분 부품도 있으니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 "
" 아뇨, 지금 굉장히 심각한 거 같은데요. "
" 그게 무슨 말이야? "
수현을 안심시키려 꺼낸 말 사이로 덕개의 발언이 끼어들었다. 뭐? 왜 또! 잠뜰은 심각한 얼굴로 덕개에게 눈을 돌렸다. 어느샌가 잠수정 바닥의 동그란 해치를 연 덕개가 장갑을 낀 손으로 잠수정의 아래를 감싼 옥빛의 질척한 액체를 쭈욱 늘리며 집어 들었다.
" 이거 보세요. 미끈거리고, 끈적하고. 점액질 같은데⋯ 아무래도 산성 물질인 거 같죠? 저기 밖에, 잠수정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잖아요. "
참, 눈치 없다고 그러지 마세요. 모르고 있다가 죽는 것보단 낫잖아요. 덕개가 미끈축축해진 장갑을 벗어 그대로 바깥에 던져버리곤 머뭇거렸다. 괜히 분위기에 초 친 것 같아 그러나. 잠뜰은 덕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아냐, 잘했어. 맞는 말이야. 모르고 죽는 것보단 낫다. 조용히 속삭여주자 덕개의 얼굴이 화사하게 펴졌다.
일단 어떻게 할지 좀 생각해 봐야겠지⋯. 잠뜰은 자리에 앉아 키패드를 마구 두드렸다. 큰 유리창에 크고 작은 창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그런 와중에 뒤에선 몇 번째인지도 모를 언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점점 언성이 커지는데 말릴 사람이 하나밖에 없으니 쉽게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앞뒤 좌우가 죄다 혼란스러우니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 산성 물질이라고? 와, 진짜네! 이 속도면 얼마 안 가서 철판까지 다 녹아버릴걸! 그럼 잠수정에 물이 들어차든가, 우리가 저 늪에 빠지거나 둘 중 하나겠지! "
" 음, 뭐라도 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그냥 이렇게 보니까 완전 젤리 같은데. 칼을 쓰면 잘리려나? 어디 보자. ⋯⋯안 되네. 미안해, 빠트려버렸어. "
" 형, 괜찮아. 내 거 줄게요. 하나 더 있거든. "
" 역시 칼도 안 통하잖아! 우리 어떡해? 팀장님, 빨리 뭐라도 좀, 더 해봐요! 여기서 죽을 거야? "
" 아, 조용히 좀 해봐요! 팀장님도 대책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
" 가만히 앉아 있어 봐야, 뭐가 되긴 해? 입이든 몸이든 움직여야 변화가 생기고 결과가 나오지! "
" 공룡 씨, 저희는 바다에 대해선 문외한이잖아요.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실 때에만 손 뻗는 건⋯. "
" 수현 씨, 저 사람들도 점액질 늪에 잠수정 째로 처박히는 경험은 처음일걸요. "
" 하지만⋯, "
" 그럼 형이 그 잘난 머리로 뭔가 해보던가요. 형은 지금 그렇게 말하면서 입으론 불평불만만 쏟아내고 있잖아요. 저희보고 뭐라도 좀 해보라면서요. 말 꺼낸 사람이 솔선수범해도 모자랄 판에 혼자서 우는 소리, 분위기만 가라앉게, "
" 잠깐, 둘 다 잠시만, 잠깐 멈춰 봐요! 아니⋯! "
" 야 그럼 죽게 생겼는데 멀쩡하겠냐! 난 죽어도 땅 위에서 죽고 싶어. 인간답게! 저 심해에 처박혀서 해골만 남고 싶은 게 아니라—! "
" 이것들아, 좀 멈춰 보라고! "
쾅!
" 아으, 진짜 다들 시끄러워 죽겠네! 그만 좀 해요! "
집중이 하나도 안 되잖아! 잠뜰은 책상을 세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소리에 놀란 세 사람이 사고 치다 딱 걸린 반려견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 후우. 빡세네. 집중하느라 앞으로 다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려 넘기면서 숨을 골랐다. 큰 소리를 내니까 내 목만 아프고. 에휴. 잠뜰은 손뼉을 쳐 주의를 집중시키곤 짧은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 자, 여기 보이죠? 잠수정에 탑재된 탐지기로 주변 일대를 도식화한 거예요. 그리고 여기, 우리 잠수정이 추락한 이 바닥 부분 아래에, 통로가 하나 있어요. 어쩌면 여길 탈출로로 쓸 수 있을지도 몰라요. "
" 통로, 탈출로⋯? 아, 채굴용 드릴을 챙겨왔었죠! 점액이 강산성을 띠니까 땅도 부식되어서 약해졌을 거고! "
" 그렇죠! 역시 수현 씨, 잘 아시네요. "
잠뜰은 수현을 향해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날려줬다. 수현은 얼떨떨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손을 흔들었다. 별론가? 괴상한 반응 때문에 몰려드는 잡생각을 몰아 치우고, 다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 제가 생각한 게 있어요. 그러니까 다들 그만 싸우고 이리 좀 모여봐요. "
이런 상황에 싸우면 어떡해. 마음을 모아야 나갈 거 아니에요. 잠뜰은 간절한 마음으로 손짓했다. 수현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달려왔고, 덕개와 공룡은 서로를 복잡한 표정으로 보다가 결국 승복하고 모여들었다.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삐딱하게 선 공룡이 팔짱을 끼고 불퉁하게 말했다.
" 빨리 말해봐요, 팀장님. 계획이 뭔데요? "
" 드릴을 달아 바닥을 뚫고, 엔진의 출력 리밋을 해제할 거예요. 폭발적인 힘으로 나아가면 점액층을 뚫고 저 통로까지 충분히 도달할 수 있어요. 일단 공룡 씨는 프로펠러와 드릴을 달아주세요. 계획의 핵심은 잠수정을 고치는 거니까. 자타공인의 천재잖아요. 멀쩡하게 고쳐놓을 수 있죠? "
" ⋯나쁘지 않네. 두말하면 잔소리죠. 제가 할 일은 그것뿐인가요? "
" 네. 충분해요. "
공룡은 잠수복을 입으며 잠시 구시렁대더니 잠수정 구석에서 연장을 챙겨 뒤편 해치를 열고 나갔다. 커다란 중앙 해치는 점액에 파묻히는 바람에 사람 하나 겨우 빠져나갈 만한 뒤편의 간이 해치를 써야 하는데, 다행히도 연장이 걸려 나가지 못한다거나 하는 문제는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잠뜰은 공룡이 빠져나갈 때까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다가, 큰 사고가 생기지 않자 안심하며 다시 발표를 이어 나갔다.
" 자, 우리는 뭘 해야 하느냐. 주변 탐색을 나가서 위험한 건 없는지 확인하고 탈출을 위한 루트를 계산할 겁니다. 어떻게 땅을 파야 한 번에 통로로 빠져나갈 수 있는지, 그걸 보자는 얘기죠. 수현 씨는 땅을 살펴서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점쳐주세요. 만약 바닥을 뚫는 게 힘들다면 이 계획은 폐기하고 새로운 작전을 짜야 하니까, 빠르고 신중하게 답을 내주셔야 해요. "
" 네⋯! 어렵지만 해보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
" 덕개는 조사가 끝나면 공룡 씨한테 가서 설치를 도와줘. 네가 그래도 힘은 세니까. "
" 알겠어요. "
" 준비 단단히 했지? 심해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마시고, 갑시다! "
좋아. 차근차근 해보자고. 아까 많이 싸웠으니 이젠 팀워크 발휘할 때 됐잖아? 잠뜰은 얼굴에 짙게 미소를 띠곤 잠수복의 소매에 팔을 꿰었다. 오리발과 산소 탱크까지 꼼꼼히 확인하고서, 두 동료를 데리고 해치 아래로 뛰어들었다.
풍덩—!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 덕개는 사진기를 들고 여러 군데를 헤엄쳐 다녔고, 수현은 덕개에게 받은 칼로 땅을 여러 차례 긁었다. 멀리서 공룡이 공구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대로만 하면, 금방 빠져나갈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왜일까. 끈적한 어둠이, 몸을 휘감고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
" 푸하아. "
공룡 씨는 아직인가? 잠뜰은 더운 숨을 내쉬며 옷에 묻은 물방울들을 털어냈다. 대각선으로 기울어진 탓에 잠수정 앞쪽으로 물이 전부 쏠려 가 찰랑거렸지만 어쩔 도리가 없으니. 나중에 닦으려면 고생 좀 하겠는걸. 온몸이 다 아프다며 축 늘어진 수현에게 비상 간식 하나를 꺼내 건네주고 제 자리에 앉아 모니터링을 했다. 수리를 끝낸 공룡이 잠수정 벽을 타고 빠르게 헤엄쳐 오고 있었다.
" 프로펠러 수리에 드릴 장착까지 전부 끝났습니다아! 엔진 출력만 충분하면 이 지긋지긋한 늪에서 나갈 수 있어요! "
공룡이 해치로 올라오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자 침착해, 흔들리지 마. 잠뜰은 빨라지는 손놀림을 애써 억제하며 버튼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눌렀다. 실수하면 모든 진척도가 초기화되는 시스템이라 잘못해 다른 버튼을 눌렀다간 정말 끝장이었다. 이 기분 나쁜 둥지의 주인에게 뼈도 못 추리고 당하겠지.
"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
"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
" 아냐, 낮은 진동이 느껴져. 뭔가가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팀장님, 조금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저게 뭐든 간에, 이쪽으로 오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야 해요⋯! "
" 뭐? 팀장님, 서둘러주실래요! "
아직 단계 설정이 남았는데⋯! 잠뜰은 이를 악물고 손을 움직였다. 리밋을 해제해도, 안전을 위한 카운트다운이 남아있기 때문에 제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아니지, 일단 시도는 해 봐야—
쿵.
쿵.
쿵!
" 허억. "
쿵, 하고 지축이 흔들릴 때마다 잠수정이 크게 들썩였다. 이 넓은 바다가 전부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잠뜰은 떨리는 손으로 레버를 당겨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필요한 시간은 단 일 분. 버틸 수 있을까?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화면에 뜬 타이머만 바라봤다. 그리고 줄어드는 숫자 너머로, 온 세상 어둠을 다 가진 듯한 거대 생물이 나타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위협적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저게 뭔, "
" 팀장님, 빨리요! "
"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더 없어! "
어떡하지. 아직도 삼십 초는 남았는데, 저 속도대로면 곧 공격당할 거야. 어떡해? 내가 뭘 해야 하지? 잠뜰은 레버를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더 이상 뭘 해야 좋을지, 방도가 떠오르질 않았다. 이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이 위험한 바다를 목표로 삼은 게 문제였던 걸까? 내 욕심으로,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 건⋯!
" 팀장님, 잠뜰 팀장님! 할 수 있어요. "
" 뭐? "
" 이 잠수정을 개조한 건 나예요. 비상시를 대비해서 만들어둔 연막 장치가 있어요. 무슨 잠수정에 비상 탈출 기능도 없고, 공격 수단도 없고⋯. 아니,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저 미친 문어가 와서 가까이 다가오면, 그때 한 방 쏘자고요. 그럼 충분히 나갈 수 있어요! "
" 연막⋯? "
잠뜰은 놀란 눈으로 공룡을 올려다봤다. 다른 두 사람도 전혀 전해 들은 바가 없는지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 공룡이 가리키는 빨간 버튼을 확인하고, 고개를 돌려 괴생명체와의 남은 거리를 계산했다. 남은 타이머는 십 초, 저 거대 문어가 도달하기까지도 비슷한 시간이 걸릴 거야. 그럼 가능성이 충분해! 잠뜰은 반짝 떠오르는 기분으로 손뼉을 쳤다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좋은 방법은 방법인데, 아니 근데,
"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을 하면 좋잖아! 지금까지 왜 가만히 있다가 맘고생 하게 만들어! "
" 으에? 아, 아니 아까는 별로 쓸 데가, "
" 연막이 뭐예요. 만들 거면 미사일, 집게 손, 뭐 이런 거나 넣어주지. 다음엔 제 말 꼭 참고해줘요. "
" 오, 미사일 멋있다. 앗, 공룡 씨. 개조할 거면 화끈하게 변신 잠수정은 어때요? 멋있을 것 같은데. "
" 어, 멋진데? "
이제 한시름 좀 놨네. 분위기 아니고 위기만 가득하다가 갑자기 왁자지껄 시장통이 된 이 시점에서, 잠뜰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비상 버튼을 찾아 눌렀다. 마침 딱 거대 촉수가 잠수정을 덮치기 직전이라 타이밍이 아주 절묘했다. 흰 안개가 구름처럼 뭉게뭉게 퍼지는 걸 보면서, 바다 괴물의 괴성을 배경음악 삼아 엔진에 가속을 걸었다. 기다려라 문어 대가리, 네 소중한 둥지에 대빵만한 구멍을 뚫어주겠어!
위이잉—!
드드드득!
잠수정이 뚝딱거리며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 득, 득 하고 한 계단 내려갈 때마다 이가 서로 부딪힐 정도로 몸이 들썩였지만 나름 견딜 만했다. 음, 수현 씨는 멀미를 좀 하시는가 본데. 어쩌겠어, 참아야지. 잠뜰은 점점 강해지는 엔진의 출력을 긴장되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조금만 더 하면,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어! 삼, 이, 일⋯!
쾅!
쿠당탕—, 탕!
" 성공이다! 탈출했어요, 팀장님! "
" 어서 가요! "
머리 위로 쌩하니 스쳐 간 빨판 다닥다닥 붙은 두꺼운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잠수정이 넓은 통로로 빠졌다. 커다랗게 난 구멍으로 질척한 점액과 문어 다리가 쳐들어오기 전에 어서 빠져나가야 했다. 잠뜰은 신나는 마음으로 조종간을 잡았다. 바닷속 고속도로라니, 쾌감 쩌는데! 레버를 당기자 잠수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휙휙 변하는 주변 풍경을 보고 환호성이 일었다. 뭐, 땅속이라서 해봤자 빛 좀 내는 광석들밖에 없었지만, 방금 죽다 살아났는데 뭐든 안 예쁠까!
" 근데 팀장님, 이거 어디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래도 아까 그 놈은 못 쫒아오는 거 같으니까 다행이긴 한데. "
" 위험 신호가 뜨진 않으니까 괜찮을 거야. 높이 올라가서 나갈 수 있으면 제일 베스트 시츄에이션인데. 정비를 하고 탐사를 다시 떠나든가 해야 하지 않으려나. "
잠뜰은 커브를 돌고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면서 답했다. 근데 무슨 땅굴이 이렇게 다채롭대? 방향 전환에 오르락내리락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 뭍에서 고속도로 운전하는 느낌으로 잠수정을 몰고 있자니 살짝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이런 게 자연적으로 만들어졌을 리가 없는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길을 이따위로 만든 거야!
—
" 팀장님, 저기요! 슬슬 빛이 보이지 않아요? "
" 와, 드디어 나가네. 야 덕개야, 니 차례야. "
" 와, 드디어 나간다. 아, 조커 뽑았어! 형 사기 쳤지! "
" 바닥에 카드 좀 흩뿌리지 마! "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질 않는 통로 덕에 지금 몇십 분째 좁아터진 잠수정 바닥에 앉아 조커 뽑기만 수십 판을 했다. 그마저도 저나 수현은 지쳐서 나가떨어졌고. 잠뜰은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다가 뒤에서 카드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서 뒤를 돌아보며 짜증을 냈다. 그리고 잠시 조용해진 함선에, 은은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뒷편에서 서서히 비쳐오는 빛과 동료들의 놀란 얼굴을 보고서 돌아앉자마자, 넓고 푸르른 동굴이 눈 앞에 펼쳐지며 감탄을 자아냈다.
" 빛나는 해파리들이 엄청 많아요⋯! "
" 엄청 밝네. 떠다니는 저것들 때문인가? "
꽤 멋진데. 잠뜰은 잠수정의 속도를 천천히 늦추면서 몸을 일으켜 유리창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탁 트인 시야에 온갖 빛나는 것들이 가득했다. 작은 해파리와 심해 물고기들, 색색의 산호와 해초. 육지의 반딧불이 비슷한 것들도 있어 바라보는 이들의 눈이 점점 커졌다. 곳곳에서 우와, 하는 탄성이 터지며 각자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창가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뜰은 쿡쿡 웃으며 잠수정의 시동을 껐다. 흘긋 보니 수면으로 통하는 수직 통로가 있는 것 같아 나갈 걱정은 없을 듯했다.
" 다들, 이 통로의 목적지는 여기인 것 같은데. 어때. 탐사하러 가볼까? "
" 사진 찍을 게 여기저기 널렸어요! 이 정도면 저희, 실적 잘 낼 수 있겠는데요? 아까 그 이상한 거까지 하면! 저 먼저 다녀올게요! "
신나서 방방 뛰던 덕개가 먼저 뛰쳐나갔다.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저 너머로 사라지는 덕개를 보며 남은 셋이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수현은 눈을 접어 웃고는 자신도 저 멀리 있는 난파선을 조사해 보겠다며 뒤따라 나갔다. 아니, 행동력이 왜 이렇게 좋아? 달랑 남겨진 잠뜰은 같은 처지인 공룡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 빠르네. "
" 여기선 죽을 위기에 빠질 일은 없을 것 같네요. 그럼 다들 구경가신 동안 전 점검을 좀 해야겠어요. 아무리 나름 안전하게 탈출했다곤 해도, 여기까지 오느라 엔진이 상했을 수도 있으니까. "
이제야 좀 안심된다며 기지개를 시원하게 쭈욱 켠 공룡이 피곤한 낯으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가, 곧장 한숨을 쉬며 비척비척 일어났다. 잠수복에 꾸물꾸물 몸을 욱여넣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나 싶었다.
" 공룡 씨도 많이 지친 것 같은데 조금 쉬시면? "
" 전 불안하면 다리를 떨어요. 그러면 잠도 못 자고 제대로 쉴 수도 없으니까 후딱 끝내고 오는 게 낫죠. 팀장님은 운전하느라 고생하셨으니 쉬세요. "
공룡은 그대로 손을 흔들며 힘없이 바다로 나갔다. 미꾸라지처럼 스르륵 빠져나가는 걸 보니 어지간히 피곤한 것 같은데, 참 힘들게 사는 듯해 안쓰러웠다. 잠뜰은 책상 위에 둔 초코바를 씹으며 책상에 편하게 엎드렸다. 눈앞에서 야광 해초가 약하게 발광하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 피곤하다. 그래도 덕개가 사진 많이 찍어올 테니까, 돌아가면 드디어 실적을 올릴 수 있어. 이젠 힘없이 뺏기거나 그러진 않을 거라고. 새 팀원들도⋯ 중간까지만 해도 싸우더니 죽을 고비를 넘기니 나름 유대가 생겼는지 유치원 애들 장난 정도로 줄었고.
참, 동료라 하니⋯. 잠뜰은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뒤편에 모아둔 상자들을 뒤졌다. 이건 덕개 여분 필름이고. 토끼 방석, 이건 수현 씨 건가? 다 넘기고, 이건 뭐야. 뭔 퍼즐 같은 게 여기 있어? 우리 애가 이런 걸 하진 않을 거고. 공룡 씨 취민가 보네. 그런데 일자리에서 이런 걸⋯. 아냐, 자유를 존중해줘야지. 난 그렇게 꽉 막힌 팀장이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내 편지지는 대체 어디 있는, 아 찾았다!
잠뜰은 찾던 물건을 마침내 발견하고 잠시 기뻐했다. 혹시 돌아가지 못 할 경우를 생각해서 탐사 직전에 푸른색의 편지지와 봉투가 들어있는 세트 상품을 샀는데, 이제는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부 편지! 이번 탐사가 끝나면 라더 씨가 있을 미지의 심해로 가기로 했으니까. 그 전에 편지를 미리 보내두면 좋지 않을까나.
잠뜰은 편지지를 찾아냈던 상자를 다시 뒤져 펜을 꺼내 들고, 천천히 편지를 써 내려갔다. 아, 덕개도 할 말 있으면 쓰라고 종이도 몇 장 남겨두자. 다른 팀원들하고 모여서 사진도 찍고 보여줘야지. 갑자기 사람이 늘면 놀랄 수도 있잖아. 편지와 동봉할 여러 가지도 미리 고른 잠뜰은 글씨도 최대한 예쁘고 정갈하게 쓰려고 노력하다가, 이렇게 의식하고 편지를 쓰는 건 거의 없던 일이라 조금 어색해서 때려치웠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 끝내주는 관광을 즐기고 온 덕개와 난파선 안에서 찾은 금은보화를 챙겨 왔다며 웃는 수현을 맞이하고 나니 머리에 웬 커다란 해파리를 달고 온 공룡까지 돌아왔다. 편지를 썼다는 걸 알리고, 함께 넣을 만한 게 있다면 부디 건네주기를 청하자 뭔가 한가득 올라간 손이 냉큼 내밀어졌다. 친구들이 준 기념품들을 적당히 고르면서, 덕개가 쓴 편지를 구경하고 있으니 불길한 가정이 화제로 떠올랐다.
" 근데요, 팀장님. 라더 씨 글자는 알겠죠? 바다에서만 살았을 텐데, 글자를 알려나. "
" 무슨 그런 불길한 말을 해?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 못 알아보면 용서 안 할 거야. "
괜히 불안감을 조성하는 덕개에게 한마디 던져주고, 잠뜰은 말은 잘만 하던 인어를 떠올리며 불안한 상상을 멈췄다. 에이 설마. 글자 몰라도 사진 넣을 건데 뭐, 알아서 알아보겠지⋯.
—
" 이야, 얘 대단하다. 어떻게 촉이 이렇게 좋지. "
" 조용히 해요. 그러는 당신도 글자 못 읽으면서. "
" 난 주술은 쓸 줄 알잖아. 너 나 아니었음 얘네 말처럼 전혀 모르고 살았을 거 아냐. "
" ⋯그렇죠. "
다 맞는 말이라 뭐라 할 말이 없네. 라더는 손에 들린 바다를 닮은 편지지를 내려다보았다. 오래전에 마주쳤던, 자신을 심해 탐사대라 소개했던 인간들이 써서 보낸 것이었다. 처음 발견했을 땐 엄청나게 놀랐지. 지금껏 해초 다발만 떠다니던 바다 위에 유리병이 떡하니 나타난 데다가, 그 안에 든 여러 장식물이나 빵빵한 편지봉투가 전부 나에게 보낸 선물이었으니까. 아니, 편지랑 사진 다 해서 이게 대체 몇 장이야 이게? 어떻게 하면 이게 그 봉투에 다 들어가는 거지?
사실 제일 신기한 건 이 사람, 아니 해파리지만. 해파리는 물고기도 아니라 인어라고 부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그냥 해파리라고만 부르기엔 너무 사람 같잖아. 라더는 제 옆에 앉아 여유롭게 물로 만든 방울을 씹어 삼키는 각별을 봤다. 처음 이 바다에 홀연히 나타나서, 제 능력이라며 물방울에 지나가던 열대어를 가두곤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건네던 모습이 생생했다. 그것도 좀 오래된 일인데 이렇게 잘 떠오르는 걸 보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 보지.
어쨌든 이 사람 이사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인간 세계 글자 좀 배워둘 걸 그랬나. 아니 근데 내가 사람 친구⋯ 같은 게 생길 줄 알았겠냐고. 속으로 툴툴대긴 했지만, 은근히 후회되기도 했다. 미리 알고 있었으면 이렇게 도움받지 않아도 될 텐데. 주술을 통해 이 편지에 담긴 기억을 구체화해서 보여준 건 오로지 각별의 호기심과 약간 첨가된 호의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라더는 괜히 이상해지는 기분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 그래도 어르신 덕에 인간들이 자주 본다는 그 티브이라는 것도 간접 체험하고, 좋네요. "
" 그런 거랑은 차원이 다른 기술이긴 하지만, 뭐. 비슷한 용도긴 하니까. "
" 저기가, 님 고향이라 그랬죠? 차가운 바다. "
" 그렇지. 아, 이렇게 보니까 조금 그립네. 저 킹 크라켄도. 쟤가 맨날 우리 집 가는 길 더럽혀놔서 자주 싸웠는데. "
라더의 물음에 각별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위아래로 흔들릴 때마다 머리에 얹힌 비닐 같은 막과 검은색 머리카락이 함께 움직였다. 라더는 막에 달린 얇고 기다란 촉수를 닮은 것들이 자의식을 가진 것처럼 살랑살랑 움직이는 걸 신기하게 보며 각별의 말에 가볍게 응수했다.
" 이 사람들 기억 보면 되게 멀어 보이는데, 은근 가까웠나 봐요? "
" 인간 기준으론 멀겠지. 난 해류 타고 가면 금방인데. "
" 아아, 해류. "
해파리는 가벼워서 잘 날아가겠구나. 재밌겠다. 라더는 반려 해파리들이 그립다며 우는 체하다가 갑자기 또 일어나 공기 방울 밖으로 손을 내밀어 휘적거리는 각별을 적당히 무시하며 잠뜰의 탐사 기억이 담긴 방울을 톡톡 쳤다. 저 멀리 떠나서도 제 생각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또 찾아올 날을 기다린다는 건 꽤 즐거운 경험이라 여겨졌다. 지금까지 친구라 할만한 존재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 어쨌든, 네 친구들 곧 온다는 거 아냐? 맞이하러 가야겠네. 나는 그 인간들한테 감상 물어봐야겠다. 내 집 어땠는지. 뭐, 이미 반응 보니 되게 마음에 들었던 거 같지만. "
" 너무 놀리진 마세요. 동료도 늘었다 그러니까 다 같이 몰려오면 분명 시끄러울 거야. "
" 그래, 그래. 그럼 난 간다. 네 친구들 오기 전까지 좀 쉬어야지. 그리고 그건 선물이니까 잘 간직하고. "
각별은 밖으로 내밀었던 손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물에 젖으니 각별의 모자 정도로 여기고 있는 그 막이 해파리처럼 넘실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해파리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라더는 떠나는 이에게 인사를 건네며 방금까지 괴짜 손님이 누워있던 제 침대에 걸터앉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방울에 맺힌 익숙한 두 얼굴을 보다가, 얼마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올 재회의 날을 그리며 그 자리에 누웠다. 언제나 장난스럽고 한 편으론 진지한, 한결같은 친구들을 만나 긴 회포를 풀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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